📑 목차
포뮬러 원(F1)은 단 0.001초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극한의 기술 경쟁 무대다.
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은 2020 시즌,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독창적인 조향 기술인 DAS(Dual Axis Steering)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 기술은 단순한 핸들 움직임이 아니라, 드라이버가 주행 중 직접 타이어의 각도를 조정해 타이어 온도, 마모, 그리고 차량의 직진 안정성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혁신이었다.
당시 이 시스템은 FIA 규정의 경계선을 정면으로 시험하면서도, 메르세데스 팀의 기술적 완성도와 엔지니어링 창의성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DAS 시스템의 원리, 개발 배경, 실전 효과, 그리고 금지에 이르게 된 과정을 기술적 관점에서 자세히 탐구하고, F1 기술 발전사 속에서 이 시스템이 남긴 의미를 분석한다.

1. DAS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DAS는 “Dual Axis Steering(이중 축 조향)”의 약자다.
기존의 F1 조향 시스템은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려 앞바퀴의 방향을 바꾸는 단일 축 조향 방식이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의 DAS는 여기에 앞뒤(전후) 축 조절 기능을 추가하여, 드라이버가 주행 중에 스티어링 휠을 앞으로 밀거나 뒤로 당기며 타이어의 토우 각도(Toe Angle)를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토우 각도란 차량의 앞바퀴가 서로 평행하지 않고 안쪽 혹은 바깥쪽으로 살짝 향하는 각도를 말한다.
이 각도는 타이어 온도, 직진 안정성, 코너링 반응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토우 인(Toein)이 크면 직진 안정성이 높아지고, 토우 아웃(Toeout)이 크면 코너링 진입이 예민해진다.
메르세데스는 이 점에 착안해, 직선 구간에서는 토우를 줄여 속도를 높이고, 코너 진입 전에는 토우를 늘려 안정적인 그립을 확보하는 방식을 구현했다.
이 기능은 단순히 “핸들을 움직인다”는 개념이 아니라, 주행 중 앞바퀴의 각도를 실시간 제어하는 정밀 기계 장치였다.
결과적으로 드라이버는 타이어의 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F1 경기에서 치명적인 문제로 꼽히는 “타이어 과열”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2. 개발 배경: 왜 메르세데스는 DAS를 만들었는가
메르세데스 팀은 2010년대 후반부터 F1을 지배했지만, 2019년 시즌부터는 타이어 온도 관리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Pirelli(피렐리)가 공급한 2019년형 타이어는 작동 온도 범위가 매우 좁았고, 적정 온도에서 벗어나면 급격히 성능이 저하되었다.
특히 저온 서킷에서는 타이어 온도를 충분히 올리지 못해 그립이 떨어지고, 마모 패턴이 불균일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메르세데스의 엔지니어들은 기존의 서스펜션 구조와 스티어링 메커니즘을 면밀히 분석했고, “드라이버가 주행 중 타이어의 토우 각을 직접 제어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DAS였다.
메르세데스는 2019년 하반기에 이 시스템을 비밀리에 테스트했고, 2020년 바르셀로나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루이스 해밀턴이 직선 구간에서 핸들을 앞으로 밀었다가 코너 진입 시 당기는 장면이 방송에 포착되자, 전 세계 F1 팬들과 경쟁 팀들은 충격에 빠졌다.
3. DAS의 기술적 구조와 작동 방식
DAS 시스템은 단순한 기계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유압 및 기계식 인터페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핸들을 전후로 움직이는 동작은 스티어링 칼럼 내부의 특별한 슬라이딩 메커니즘을 통해 전달되며,
이 신호가 앞바퀴 서스펜션 조향 링크에 직접 연결되어 타이어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한다.
핸들의 전후 이동 거리는 약 2~3cm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움직임이 타이어의 각도를 0.5도 단위로 바꾼다.
이 시스템은 드라이버가 스티어링을 조작하는 감각과 완벽하게 일체화되어 있어, 주행 중에도 불안정함 없이 자연스럽게 작동했다.
또한 유압식 댐퍼가 장착되어 있어 급격한 움직임이나 진동으로 인한 불안정성을 방지했다.
이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것은 순수한 기계적 장치이며, 전자제어 장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FIA 규정상 ‘조향 장치의 기계적 변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지만, 명확히 금지된 조항은 아니었다.
4. 실제 경기에서의 효과
메르세데스는 2020년 오스트리아 개막전부터 DAS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루이스 해밀턴과 발테리 보타스는 주행 중 직선 구간에서 핸들을 밀어 타이어 각도를 조정했고,
이를 통해 타이어의 표면 온도를 빠르게 올리고 균일하게 유지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메르세데스는 예선에서 한 랩의 성능을 극대화하고,
레이스 중에는 타이어 마모를 최소화하여 장기 주행에서 압도적인 안정성을 확보했다.
특히 기온이 낮은 서킷에서는 DAS의 효과가 두드러졌으며, 메르세데스는 초반 몇 랩만에 경쟁 팀과의 간극을 벌릴 수 있었다.
당시 FIA는 이 시스템이 규정을 위반하는지 여부를 조사했지만, 2020 시즌 동안은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결국 DAS는 단 한 시즌만 사용되었지만, 그 시즌 동안 메르세데스는 대부분의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7년 연속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이어갔다.
5. FIA의 반응과 금지 결정
DAS는 2021년부터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FIA는 2020년 시즌 중반에 “조향 장치는 단일 평면 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는 문구를 기술 규정에 추가했다.
이 조항은 명백히 DAS를 겨냥한 것이었고, 다른 팀들이 유사한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FIA는 DAS가 “조향 기능을 넘어서 차량의 공력적 특성을 변경하는 장치”라고 판단했다.
즉, 단순한 조향이 아니라, 차량의 동적 밸런스와 타이어 성능을 비정상적으로 향상하는 장치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는 이미 그 한 시즌 동안 이 기술로 막대한 이점을 누렸고,
기술적으로도 “규정의 빈틈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합법적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6.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본 DAS의 가치
DAS 시스템은 단지 한 시즌의 실험적 기술이 아니었다.
이 시스템은 F1 엔지니어링의 창의성과 규정 해석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였다.
메르세데스의 엔지니어들은 단 한 줄의 규정 틈새를 찾아내,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을 설계했고,
그 과정에서 조향, 서스펜션, 공력, 타이어 물리학이 정밀하게 통합되는 혁신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시스템은 F1 기술 발전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후 다른 팀들은 직접적인 복제 대신, 타이어 온도 관리와 공력 균형을 개선하는 새로운 방식의 서스펜션 설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DAS는 금지되었지만, F1 전체의 기술적 진화를 가속한 ‘촉매제’로 남았다.
7. 메르세데스와 루이스 해밀턴에게 남긴 의미
루이스 해밀턴은 DAS 시스템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스티어링의 앞뒤 움직임을 “피아노 건반처럼 정밀하게 조절하는 감각”이라고 표현했다.
이 감각 덕분에 그는 주행 중 타이어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는 레이스 운영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2020년 시즌에서 해밀턴은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메르세데스는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모두 차지했다.
DAS는 메르세데스의 완벽한 시즌을 상징하는 기술이 되었고,
“규정의 경계선 위에서 혁신을 창조한 천재적 발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8. 결론: 규정 속에서 탄생한 창의성의 상징
DAS는 단 한 시즌만 존재했지만, F1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기술은 기계공학, 공력학, 인적 감각의 완벽한 조합으로,
‘규정이 혁신을 막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메르세데스의 DAS 시스템은 단순히 조향 장치의 개선이 아니라,
자동차 기술이 규제의 틀 안에서도 얼마나 창의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정적 사례다.
비록 2021년 이후 FIA 규정에 의해 사라졌지만, 그 철학은 여전히 F1의 기술적 발전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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